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 5대 법안 국회통과 시도를 앞두고, 민주노총 총파업은 현실적 과제였다. 민주노총 총파업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현대차 파업 결의가 필요했고, 이를 위한 현장 실천이 요구됐다. 10월 12일 “총파업 성사를 위한 현대차 활동가대회”를 추진하였으나 임투와 선거 등으로 인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11월 중순 A조 학습모임, 노동자네트워크, 새로운 조직 건설을 위한 준비위원회, 서영호ㆍ양봉수 열사정신계승사업회가 “11월 24일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 실현을 위한 현대차 현장활동가대회”를 제안하고, 현장활동가대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총파업 조직화를 위한 공동 활동을 시작했다.
총파업 국면이 끝나고, 이후 활동을 모색하는 논의를 통해 노동개악이 끝나지 않았고 노동개악을 현장에 적용하려는 상황에서 총파업과 현장 투쟁에 대한 공동 활동 필요성을 공감하며, 노동개악·현장탄압 분쇄! 비정규직 철폐! 민주 활동 복원! ‘현대자동차 공동행동’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대차 공동행동은 참여자의 통일성과 실천력을 강화하려 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한계가 있었다. 현대차 공동행동은 8월 20일 첫 총회를 개최하고, 공동활동에서 단일 현장조직으로 전환해야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위한 공동실천을 결의했다. 기존 각 소모임 담당자가 참여했던 팀장회의를 조별, 공장별 담당자와 업무(교선, 총무) 담당자로 확대·개편했다. 또 매주 월요일 고정적인 회의를 진행하면서 집행을 계획하고 점검하기 시작했다.
현대차 공동행동은 본격적인 임투 국면을 맞이하여 해복투 천막농성장 사수를 중심으로 출근투쟁을 진행고, 임투기간 매주 1회 이상 유인물과 대자보를 발행하여 임투 승리를 위한 방향을 선전했다. 회원들이 임투 쟁점을 이해하고 통일적인 현장 설명을 위해 임투 쟁점과 부결이후 중간평가와 이후 방향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등 조직으로 임투를 진행했다. 이 힘을 바탕으로 지부 11대 대표 및 대의원선거에 독자 출마하여 1공장사업부대표를 당선시켰다. 이러한 성과를바탕으로 단일조직 건설을 결의했고, 투쟁하는 현장조직 건설을 위해 박근혜 퇴진 현장투쟁(식당 선전전과 조합원과 함께하는 시국선언 조직 등)을 전개했다. 2016년 12월 27일 발기인 총회를 통해 명칭을 ‘공동으로 투쟁하고 행동하는 노동자’(약칭 공동행동)로 확정하고, 초대 임원들을 선출하면서 2017년 1월 20일 마침내 창립총회를 개최한다.
30년! 현대차 노동자들이 착취를 거부하고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려 투쟁한 시간이다. 열사의 한 맺힌 절규가 있었고, 수많은 동지가 징계, 해고, 수배, 구속된 아픔도 있었다. 열사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동지의 몫까지 투쟁했던 의리를 지킨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투쟁한 시간만큼 적을 닮아갔다. 노사관계 확립이라는 이름으로 부서별 상견례 후 사측과 술자리는 어느새 일상이 됐다. 이를 거부하면 혼자 깨끗한 척 한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반복적 만남으로 낮에는 투사, 밤에는 호형호제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현장 문제가 사측과 대의원 사이에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결국 현장투쟁(M/H, 투입비율, 모듈, 안전사고, 노조활동 보장 등)은 사측이 아닌 현장간부(대의원, 현장위원 등)에 의해 칼질되기 시작했다. 현장 주인인 조합원의 능동적 참여는 사측이 아닌 현장간부들에 의해 통제됐다.
어느새 우리의 진지는 사측에게 하나하나 뺏겨갔다. 그 자리는 독버섯처럼 성장한 노조관료가 사측의 전폭적인 지원에 똬리를 틀었다. 이제 생산성 향상은 사측 걱정만이 아닌 노동조합 고민이 됐다. 생산량 유지가 임금보전 기준이 됐고, 생산량 보전을 위해 가동률을 저해하는 행위는 무리한 투쟁이 됐다. 현장문제를 조합원과 함께 쟁취하는 기풍은 사라지고, 대의원이 해결사가 되는 대리주의가 자리 잡았다. 조합원은 수동화됐고, 투쟁은 상실됐다. 조합원은 알지도 못하는 공방이 교섭테이블 안에서만 이뤄졌다. 투쟁보다 협상에 매달리는 것이 이제 보편적 전술이 됐다. 기득권을 지키는 현장투쟁은 해고, 손배가압류, 구속을 각오해야 한다. 이 결과 조합원을 위한 결단이라는 명분으로 생산제일주의가 노동자 안전보다 우선시 되었고, 생산성 향상과 품질 개선을 위해 외주화·자동화를 인정해야 했다. 자본이 분할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은 확대됐고, 비정규직 투쟁 연대는 계속 축소되고 있다.
사측은 30년 동안 노동조합을 포섭하기 위해 노력했고, 한 세대를 마감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반면 자본 착취를 거부하며 계급적으로 단결했던 노동자는 자본의 분할 전략에 포섭되어 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은 확대됐고, 완성사와 부품사 노동자간 격차도 커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완성사와 부품사간의 연대는 약화됐다. 이 결과 사측과의 담합은 강화됐고, 경제적 지위를 향상하는 조건으로 계급적 단결에는 침묵하기 시작했다. 계급의식은 탈각됐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계급적 단결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전설이 되었다.
투쟁을 하자는 주장은 넘쳐나지만 행동은 없다. 집행부는 대의원, 대의원은 조합원에게 책임을 돌리는 핑계만 존재한다. 조합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투쟁은 계급의식을 꽃피우기 전에 관료적 통제에 막혔고, 현대차 운동은 노쇠해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조합주의 틀에 갇혀 계급투쟁을 멀리한 결과 운동이 정체했기 때문이다.
변화발전하지 않는 운동은 노쇠할 수밖에 없다.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을 넓게 볼 수 없듯이, 현대차 운동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면서 고립됐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 안에서 패권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이를 위한 이전투구만이 지속됐다. 지부장, 사업부대표, 대의원이 되기 위해 사측과 결탁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계급투쟁이 빠져버린 순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어용이 판을 쳐도 현장은 조용하다. 세상 사람들이 광우병 촛불을 들어도,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여론이 넘쳐나도, 국정농단 횃불이 나와도 현대차 노동자가 정치파업을 거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현실이 되었다.
계급성을 상실한 현대차 운동에 더 이상 미래는 없다. 행동 없는 혁신은 사기에 불과하다. 이제는 행동과 실천으로 새로운 현대차 운동을 만들어가야 한다. 87년 선배노동자들이 착취의 쇠사슬을 끊고 단결투쟁으로 일어섰듯이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선배들의 투쟁정신을 이어받는 새로운 운동이 등장해야 한다. 조합주의 운동에 파산을 선고하고, 제대로 된 투쟁으로 현장을 살려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변화시킬 수 없다. 함께 투쟁하고 조직하지 않으면 30년 동안 강고하게 자리잡은 관료주의와 조합주의를 넘어설 수 없고, 새로운 운동이 싹트기 전에 현장에서부터 진압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안전사고, 신차 모듈·맨아워, 외주화, 투입비율, 현장기득권 등을 둘러싼 투쟁태도와 입장은 민주노조를 구분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었다. ‘공동으로 투쟁하고, 행동하는 노동자’(약칭 : 공동행동)는 각각의 투쟁에 물러섬 없이 투쟁해서 민주노조를 사수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계급적 현장 투쟁을 복원할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을 혁신하고, 공장 울타리를 넘어 계급적 연대를 실현해 나갈 것이다. < 공동행동 >은 1년간 공동 활동을 바탕으로 단일조직을 건설하며, 우리 가슴에서 잊혀졌던 < 노동해방 >의 깃발을 다시 들고, 현대차 민주노조 운동의 대안임을 자임하며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공동행동은 관료주의, 대리주의를 타파하고, 현장 주인인 노동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 활동을 복원한다.
하나, 입으로, 머리로, 보여주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는 현장노동자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함께 조직하고, 투쟁하는 운동을 조직한다.
하나, 사측에게는 당당하며, 투쟁은 물러서지 않고, 오류에 대해서는 성찰하고 반성할 줄 아는 현장 활동의 모범을 창출한다.
하나, 현실을 핑계로 계급적 대의를 위한 투쟁을 회피하지 않고, 열정과 패기로 계급적 단결을 위한 투쟁을 조직한다.